사형수 유영철, 강호순의 안락한 옥중 노후…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진정한 답인가?
2024년 '어부 살인사건' 오명근의 병사(病死)는 시작일 뿐입니다.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은 희대의 살인마들에게 '안전한 노후'와 '평온한 죽음'을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2004년, 대한민국은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의 등장에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의 끔찍한 범죄 행각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사회는 그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이후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 역시 같은 판결을 받았습니다. 국민들은 이들이 언젠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죗값을 치를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2025년 오늘, 그 믿음은 배신당했습니다.
유영철, 강호순을 비롯한 58명의 사형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구치소 독방 안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제공되는 세 끼 식사를 하고, 아프면 치료를 받으며 우리와 똑같이 나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1997년 12월 30일 이후 멈춰버린 사형 집행 시계는, 사실상 그들에게 '국가 공인 종신 요양'을 허락한 셈입니다.
살아있는 비극: 현재 수감 중인 주요 사형수
- 유영철: 20명을 연쇄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2005년 사형 확정.
- 강호순: 부녀자 10명을 연쇄 살해. 2009년 사형 확정.
- 정두영: 9명을 살해한 '부산판 살인의 추억'의 범인. 2000년 사형 확정.
- 이춘재: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처제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 중 연쇄살인 자백. (공소시효 만료)
이들은 모두 집행 없는 사형수 신분으로, 연간 약 3,100만 원의 혈세로 수감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진정 이게 답입니까? '집행 없는 사형'의 3가지 모순
사형을 선고하되 집행하지 않는 현재의 '실질적 사형폐지' 상태는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최악의 미봉책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심각한 모순이 존재합니다.
첫째, 사법 정의의 실종입니다. 법원은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해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행정부는 그 집행을 무기한 보류하며 사법부의 판결을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 시스템의 자기모순이며, 피해자와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입니다.
둘째, '특권'이 되어버린 사형수 신분입니다. 사형수들은 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사형확정자' 신분으로, 일반 기결수와 달리 강제 노역 의무가 없습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며 소일하고 있습니다. 이는 땀 흘려 일하는 다른 수형자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명백한 특혜입니다.
피해자들은 차가운 땅속에서 고통을 곱씹고 있는데, 그들을 해한 가해자들은 따뜻한 독방에서 건강을 염려하며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세금은 과연 무엇을 위해 쓰이고 있습니까?
셋째, 끝없는 사회적 비용과 갈등입니다. 이들을 평생 수감하는 데에는 막대한 혈세가 투입됩니다. 또한 '사형 집행'이라는 이슈는 주기적으로 사회에 떠올라 소모적인 찬반 논쟁만을 되풀이하게 만들 뿐,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현실적 대안 아닐까?
사형 집행이 국제적, 현실적 문제로 어렵다면, 우리는 이 교착 상태를 끝낼 대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대안은 바로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의 도입입니다.
[대안 제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절대적 종신형)
이는 사형수들을 '사형확정자'라는 애매한 신분에서 '종신 수형자'라는 명확한 기결수 신분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명확합니다.
- 노동 의무 부과: 더 이상 '특권' 없이 다른 수형자들처럼 의무적으로 노역에 참여하게 하여,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를 강제합니다.
- 명확한 격리: '가석방'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여, 이들이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줍니다.
- 논쟁의 종식: 사형 집행 여부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멈추고, 실질적인 형벌 집행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절대적 종신형'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현재의 위선적인 '집행 없는 사형'보다는 훨씬 더 정의롭고 합리적입니다. 유영철과 강호순이 아무런 의무 없이 편안히 죽음을 기다리게 하는 대신, 교도소 안에서 평생 노동하며 자신의 죄를 되새기게 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이자, 피해자들의 눈물에 답하는 최소한의 도리일 것입니다.
이제는 선택해야 합니다. 영원히 집행하지 않을 사형 선고를 반복하며 희대의 살인마들을 '국립 호텔'에서 부양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 노동형'이라는 실질적이고 영원한 죗값을 묻게 할 것인가.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오늘도 그들의 수감일은 하루하루 평온하게 늘어가고 있습니다.